난임 환자들은 ‘착상 실패’ ‘유산’ 소식을 듣는 게 지겹다. 실패가 거듭되다 보면 ‘뭐가 잘못된 걸까’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임신이 계속 실패했던 것은 최상의 조건에서 임신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환자에게서 생산된 배아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선별하면, 난임으로 고통받던 환자도 성공적으로 임신이 가능하다. 정교한 PGT로 잘 될 임신만 시도한다는 차병원 난임센터 의료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차병원 난임 유전학센터에 모인 유전학 담당 교수와 연구원(왼쪽부터 이형송·김민지 수석연구원, 서울역 유은정, 대구 강인수, 잠실 신지은, 일산 류혜진, 강남 김세정 교수). 차병원 각 난임센터에는 유전학 담당 교수들이 있다.
반복적 유산, PGT로 ‘최상의 배아’ 골라 임신
착상 전 유전검사(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 PGT)는 시험관 시술로 얻은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기 전, 염색체나 유전자를 분석해 정상 배아를 선별하는 과정이다. 염색체의 수적 이상을 보는 PGT-A, 염색체의 구조적 이상을 확인하는 PGT-SR,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는 PGT-M으로 나뉜다. 35세 이상의 여성에게서 만들어지는 배아는 절반 이상이 비정상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40세가 되면 그 비율이 70%까지도 높아진다. 이에 배아를 곧바로 이식하기보단 PGT로 선별해 이식할 때 임신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불량한 배아인지 모르고 이식했다가 연거푸 유산하며 소모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습관성 유산, 반복적 착상 실패, 40세 이상의 고령 임신 환자는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PGT-A를 하는 것이 좋다. 유전질환이 있는 예비산모는 PGT-M, 염색체 전좌가 있는 예비산모는 PGT-SR이 필요하다. 일산차병원 난임센터 산부인과 류혜진 교수는 “유산 경험이 4번 있는 환자가 방문했길래 원인을 검사해봤더니 환자 본인에게 염색체 이상이 발견됐다”며 “세 번의 시도 끝에 PGT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는 배아를 얻어 이식했고,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3일까지 기른 배아를 대상으로 PGT를 시행하지만, 차병원은 자체 연구소인 차바이오텍에서 5일까지 키워낸 배아를 검사해 이식한다. 대구차병원 난임센터 산부인과 강인수 교수는 “3일 배양한 배아는 자궁 내에서 스스로 발육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5일 배양을 거친 배아는 착상만 성공하면 되기 때문에 임신 성공률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배아를 5일까지 키워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차병원은 1995년도부터 PGT를 시행한 만큼 다년간의 기술이 누적돼 배아의 5일 생존율도 높다.
PGT 잘 활용하면 ‘모자이시즘 배아’로도 출산 가능
정상 배아 대신 ‘모자이시즘 배아’를 이용할 때도 있다. 모자이시즘 배아는 배아에서 채취한 세포로 PGT를 한 결과, 일부 세포에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된 배아다. 채취한 세포 수 대비 염색체 이상 세포의 비율이 높을수록 모자이시즘 수준(level)이 높다고 한다. 보통은 산모에게 이식을 권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험관 시술을 거듭해도 모자이시즘 배아만 생기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정상 배아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간 환자가 지친다. 모자이시즘 배아의 임신 성공률이 정상 배아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PGT와 의료진의 기술이 합쳐져 임신에 성공하는 사례가 있다. 강인수 교수는 “모자이시즘 배아가 착상해 자라나는 과정에서 비정상 염색체가 있는 세포가 죽고, 남은 정상 세포들만 분열해 태아가 되기도 한다”며 “차병원은 PGT를 통해 모자이시즘 배아 중에서도 그 정도가 덜한 것을 선별해 임신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바이오텍 연구진과 전문의 협력으로 임신율 극대화
노련한 연구진이 수행해야 PGT 정확도가 높아진다. PGT는 배아 표면에서 세포를 5∼10개 정도 채취해 시행한다. 채취한 세포들에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배아는 대부분 정상 배아다. 그러나 채취한 세포들에선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채취하지 않은 세포에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이런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면 생검 기술이 뛰어난 연구진이 필요하다. 또 PGT 기기의 해상도가 높지 않으면 염색체의 작은 이상은 탐지되지 않는다. 비정상 염색체가 있는 배아인데도 염색체가 다 정상인 배아로 판정될 수 있다. 오판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병원은 최신 PGT 장비를 들였다. 서울역 차병원 난임센터 유은정 교수는 “실제로 타 병원에서 PGT를 여러 번 받았지만, 임신이 안 됐던 환자가 본원에서 PGT를 한 후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차병원은 1995년도부터 PGT를 시작해 거의 30년간의 경험과 연구 결과가 누적됐다. 타 병원은 PGT를 별도의연구기관에 위탁 의뢰하지만, 차병원은 자체 연구소인 차바이오텍 유전체연구센터가 있어 의사와 연구진이 소통하기도 쉽다. 강인수 교수는 “어떤 배아를 환자에게 이식할지 결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의사와 연구진이 의논할 때도 있다”며 “의사는 환자를 보는 전문가고, 연구진은 PGT 전문가이므로 함께 논의했을 때 임신 성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 분당, 강남, 일산, 대구에 있는 차병원 난임센터 의료진과 차바이오텍 연구진은 성공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한다. 모든 센터에서 환자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연구팀이 주기적으로 센터를 옮겨 일한다. 오는 4월엔 차병원 최고의 의료진들로 구성된 잠실 난임센터를 개소하고, 차병원 글로벌 난임 트레이닝 센터 (Global CHA ART Training Center)를 판교에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