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식의학·롱제비티’ 융합 첫 논의
- 차병원 주최 국제 콘퍼런스 성료
- 세계 여성의학 석학들 한목소리
- 생식 노화는 여성 건강 핵심 지표
차광렬 연구소장이 16일 열린 세계 첫 ‘생식의학·롱제비티 융합 국제 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생식(生殖)의학의 연구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별개의 학문으로 여겨졌던 생식의학과 롱제비티(Longevity·건강수명 연장)를 연결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면서다.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 이곳에서 이틀간 세계 첫 ‘생식의학·롱제비티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차병원과 아시아·태평양생식의학회(PSRM)가 공동으로 난소 노화가 여성의 건강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행사에는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 등 7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생식·노화 연구 권위자 한자리에
이날 현장에서는 생식의학과 노화 연구를 대표하는 세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난소의 노화를 늦추면 여성의 건강수명도 늘릴 수 있을까.’ 난임 치료나 임신·출산에 머물렀던 생식의학의 목표를 여성의 건강수명 연장으로 확장하는 가능성을 두고 머리를 맞댄 것. 이들은 생식 노화를 늦춰 전신 노화와 질병 발생도 지연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동안 생식의학은 난임 치료와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에 노화 연구는 암과 심혈관 질환,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늦추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 왔다. 이번 콘퍼런스는 그동안 별개 분야로 발전해 온 두 분야를 연결해 여성 건강 관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장에서는 열띤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시스템생물학자로 기조강연에 나선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의 우리 알론(Uri Alon) 교수는 무려 3억 건에 달하는 실험실 데이터를 분석한 ‘폐경 역학 연구’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래 의학은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개별 질환의 치료를 넘어 노화 자체를 늦추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생식 노화는 이러한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생체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폐경을 신체 기능이 급격히 달라지는 주요 전환점으로 정의했다. 폐경 전후로 골밀도가 급감하고 심혈관 질환 위험 요인이 증가하는 만큼 월경 주기와 신체 변화가 시작되는 ‘폐경 이행기’부터 골밀도 정밀 검사와 호르몬 치료(HRT)를 통해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석자들은 난소를 단순한 생식기관이 아니라 여성의 전신 노화와 건강수명을 좌우하는 핵심 기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서유신 교수는 난소를 ‘생식’이라는 말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폐경은 생식 노화의 시작이 아닌 결과”라며 “난소 노화는 폐경 15~20년 전인 20대 후반부터 시작되고, 가임력뿐 아니라 뼈와 심혈관, 뇌, 면역 체계 등 전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여성 건강 위한 생식의학 새 패러다임
실제로 장수와 생식 수명의 연관성을 나타낸 연구결과도 있다. 이날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100세 이상 장수한 여성들은 40대까지 출산한 사례가 많고, 폐경이 늦은 여성의 경우 본인뿐 아니라 그들의 남성 형제들까지 평균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관찰됐다. 생식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남녀 모두의 건강수명과 깊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어 서 교수는 “난소 기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연구는 임신 가능 연령을 늦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난소 기능을 보호해 여성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차광렬 차병원·차바이오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은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생식의학과 롱제비티가 결합한 새로운 의학의 미래를 논의하게 돼 뜻깊다”며 “차병원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난임·생식의학과 K-Cell 연구 역량을 총동원해 향후 난임 극복을 넘어 전신 노화를 늦추고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융합 연구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난소 노화 억제, 여성 전 생애 건강수명 늘리는 열쇠”
(인터뷰) 우리 알론·서유신 교수
난소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여성의 건강수명과 직결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폐경을 준비해야 할까. 생식의학과 롱제비티(장수) 융합 연구를 이끌고 있는 우리 알론 교수와 컬럼비아대 서유신 교수를 만나 생식노화에 대한 의미와 관리 전략을 들었다.
Q : 이번 콘퍼런스가 갖는 의미는.
A : 우리 알론 교수(이하 알론 교수) “생식과 노화 분야가 하나로 만난 역사적인 순간이다. 노화 연구는 생식 노화를 늦추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생식의학은 ‘생식 노화를 지연시켰을 때 실제로 전반적인 노화가 늦춰지는가’를 검증하는 척도가 된다.”
Q : 생식 노화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A : 서유신 교수(이하 서 교수) “많은 사람이 폐경을 생식 노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생식 노화는 폐경 15~20년 전부터 시작된다. 난소 기능은 20대 후반부터 빠르게 떨어지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다. 그동안 생식 건강을 위한 연구와 논의도 부족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난소를 단순한 생식기관이 아니라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로 바라보는 연구가 늘면서 생식 노화가 여성 건강의 중요한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나.
A : 서 교수 “난소는 인체 장기 중 가장 일찍 늙는다.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 뼈, 심혈관, 뇌, 면역 체계 등 몸 전체가 함께 늙어 전신 건강을 뒤흔든다.”
A : 알론 교수 “폐경은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건강이 악화하는 매우 급격한 전환점이 된다. 월경 주기가 멈추는 바로 그 순간 골밀도가 폭발적인 속도로 손실되고 심혈관 질환 위험이 급증한다. 수억 건의 검사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다.”
Q : 폐경 관리 전략이 따로 있나.
A : 알론 교수 “폐경은 마지막 월경 후 1년이 지난 시점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실제 중요한 시기는 그보다 앞선 ‘폐경 이행기’다. 월경 주기가 달라지면 안면홍조와 브레인 포그(인지 저하), 수면장애, 관절통, 감정 기복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폐경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특히 45세 전후로 골밀도가 낮다면 전문의와 상의해 호르몬대체요법(HRT)을 예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핵심은 폐경 이후가 아닌 폐경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Q : 줄기세포나 유전자 연구의 활용 가능성은.
A : 서 교수 “특히 차병원처럼 줄기세포 은행(K-Cell)을 구축해 놓은 곳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보고(寶庫)다. 난소 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를 찾아 줄기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규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면 향후 유전자 기술과 결합해 할 수 있는 치료 연구가 무궁무진하다.”
Q : 생식 노화 연구가 가져올 변화는.
A : 알론 교수 “10년 전만 해도 노화를 늦춘다는 것은 공상과학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동물실험에서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의학은 질병 하나를 치료하는 시대를 넘어 노화 자체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A : 서 교수 “생식 노화는 더 이상 임신과 출산만을 위한 연구가 아니다. 앞으로 연구의 목표는 임신을 돕는 데서 여성의 건강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이다. 생식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뼈와 심혈관, 뇌 건강까지 함께 지킬 가능성이 커진다. 앞으로는 난소를 생식기관이 아니라 건강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장기로 바라보는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